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롱비치 (루이나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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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 역사 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롱비치 (루이나)/역사)] 롱비치 일대는 중세까지 동해안의 작은 어촌들이 흩어진 곳이었다. 근세에 들어 동쪽 바다로 나가는 항로가 열리면서 항구가 커졌고, 17~18세기 영국 상인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해안을 따라 이어진 긴 모래사장을 '롱 비치'라고 부르면서 지금의 이름이 굳었다. 19세기에는 조선소와 창고가 들어서며 동해안 최대의 항구로 자랐다. 1885년 공화국 수립 당시 롱비치는 벨포르와 함께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. 헌법제정회의에서 롱비치는 인구가 많은 시를 대표해 '롱비치 플랜'을 내세웠고, 작은 시를 대표한 [[크레테 (루이나)|크레테]]와 맞서다 [[벨포르 타협]]으로 절충했다. 이 타협으로 하원은 인구에 비례해, 상원은 시마다 같은 수로 뽑는 지금의 의회가 만들어졌다. 20세기 초 롱비치는 영화의 도시가 되었다. 1910년대 맑은 날이 많고 바다와 언덕, 구도심을 한꺼번에 찍을 수 있는 롱비치에 촬영소가 하나둘 들어섰고, 1930년대에는 오로라 힐스에 대형 영화사들이 자리를 잡았다. 1941년에는 [[롱비치 경찰국]]이 창설되었다. 검은 10년 동안 롱비치는 조직범죄와 정치 폭력에 시달렸다.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롱비치의 사보이아 조직은 [[올덴버그 마피아]]와 항만의 하역권을 두고 항만 전쟁을 벌였고, 롱비치 항만 창고 습격 같은 무장 공격도 잇따랐다. 1982년 4월에는 [[혁명적 노동자동맹(RWL)]]의 총책 알랭 R. 도르망이 롱비치에서 검거되었다. 1979년 12월 23일부터 1980년 1월 1일까지 롱비치에서는 [[12.23 민주화운동]]이 일어났다. 군정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를 계엄군이 무력으로 진압하자 시민들이 시민군을 꾸려 맞섰으나, 계엄군은 시를 다시 장악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을 학살했다. 군정은 이 사건을 '롱비치 폭동'이라 불렀지만, 롱비치에서 흘린 피는 이듬해 [[10.24 시민혁명]]으로 군정을 무너뜨린 저항의 원동력이 되었다. 1990년대 이후 롱비치는 항만과 영화 산업을 바탕으로 성장했지만, 2000년대 들어 항만 물동량이 정체하면서 침체에 빠졌다. 2008년부터 8년 동안 [[민주공화당(루이나)|민주공화당]] 시장이 연임하는 사이 부패와 청년 실업이 쌓였고, 2016년 선거에서 무소속의 루스탈지아 그래이가 60.2%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. 그래이는 2019년 재선된 뒤 2021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며 시장직에서 물러났다. 2022년에는 롱비치 광장 야시장에서 극우 성향 청년 2명이 이민자들을 겨냥해 총기를 난사해 7명이 숨지는 혐오 범죄가 일어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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